터키의 쿠르드 침공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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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매우 제한적이다. 우리는 중동지역을 거대한 단일지역으로 본다. 중동지역을 하나로 보게 하는 것은 이슬람이라는 종교다.

그러나 중동지역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종교적으로도 이슬람은 수니와 시아로 나뉘어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을 계속했다. 그런 점에서 유럽에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나뉘어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을 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인종적 언어적으로도 다르다. 이란은 아랍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란 문명은 그리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해왔다. 적어도 문명에 있어서 이란은 그리스보다 앞선다. 그런점에서 시리아와 이라크 그리고 이집트같은 국가들은 인류문명의 발상지라는 점에서 사막한가운데에서 아무것도 없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슬람이라는 아주 얊은 덥개 하나로 중동을 모두 싸잡아 보지만, 조금만 들어가보면 각자 어머어마한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중동지역을 하나로 관통하고 있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제국주의의 경험이다.

중동지역을 하나의 동일한 지역으로 규정하려 한다면 가장 공통적인 것이 종교가 아닌 과거의 경험, 즉 제국주의의 지배를 당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지금 중동이 겪고 있는 현상은 제국주의 지배의 후유증에 다름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한때 인류문화에서 가장 앞섰던 지역들이 모두 제국주의의 지배를 당한 것이다. 그런 피지배의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중동을 동일한 하나의 집단으로 보게 만든 것이다. 터키는 그런 점에서 다른 중동지역과 차이가 있다. 터키는 제국주의의 지배를 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럽역사내내 유럽의 국제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럽의 외교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세력균형을 이야기하면서 그 구성요소로 5개국가를 언급한다. 즉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 오스트리아다. 그러나 중세이후 제1차 세계대전까지 터키는 유럽의 국제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력이었다.

유럽외교사의 기틀을 잡은 랑케는 유럽을 그리스 로마적 문명의 연속으로 파악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터키는 유럽의 외교사에서 빠져버렸다. 그러나 오스만투르크를 빼고 어떻게 유럽의 외교사를 논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세력균형은 5개국가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평가도 지극히 유럽 일방주의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책을 읽어보면서 흔히들 너무나 당연한 상식처럼 이야기하는 세력균형과 5개국론이 어쩌면 편견의 산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르드 족은 영웅적인 역사를 지닌 비운의 민족이다. 십자군 전쟁때 유럽의 침입을 막아낸 것은 쿠르드의 영웅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여기저기에서 떠돌고 있다. 유대민족보다 더 강인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 쿠르드 족이다. 그들의 인내와 끈질김이 경의롭다. 그리고 그들이 당하는 고통에 연민을 느낀다.

미국이 터키의 쿠르드 족 침공에 대해 오불관언하다가 아주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미국은 지금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군인들이 동맹인 쿠르드를 터키가 침공한 것을 허용했다고 해서 들고 일어난 모양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들어가보면 그것이 우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터키야 말로 미국의 진짜 동맹이다. 터키는 러시아가 흑해에서 지중해로 나오는 것을 막아내는 첨병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말을 바로하자면 지금 터키와 쿠르드는 미국의 큰 동맹국과 작은 동맹국간의 싸움이다. 트럼프는 처음에는 당연히 큰 동맹국의 편에 섰다. 그러나 비난이 거세지니까 쿠르드 편을 조금 드는 것 같을 뿐이다.

쿠르드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미국의 동맹국이라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터키의 쿠르드 공격은 미국의 또 다른 동맹국이 공격해오면 미국도 꺼벙하게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쿠르드에서 한국의 모습을 떠올리지 못하면 국제정치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터키는 일본과 비슷하고 쿠르드는 한국과 비슷하다. 둘도 강한 동맹과 약한 동맹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터키의 쿠르드 공격에 대해 미국이 터키의 손을 들어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터키가 기존의 일방적인 미국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러시아와 손을 잡을 것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되면서 미국은 터키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

미국이 일본의 한국 경제침략을 손놓고 바라보고 있는 것도 본질적으로 터키와 쿠르드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미국은 더 강한 일본에 의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좀 더 작은 동맹의 이익에 대해서는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관건은 우리가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국가가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하나로 단합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 정치인들은 둘다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못하면 국민들이 해야 한다. 정치에 그만 쓸려다니고 사실을 직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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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일본과 한국이 싸우면 일본편이 될게 뻔합니다.
그런데도 미국을 큰 형, 일본을 작은 형 쯤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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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너무 오래 그렇게 각인되어서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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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미국이 일본을 터키처럼 여겼을지 모르나 실제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위치는 유럽의 영국과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대륙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고 매우 친미적(?) 이지요. 오히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터키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사에서 한국은 터키적(?) 스탠스를 취할 때가 많았습니다. 역대 정권 중 누구 하나 미국이 다루기 쉬웠던 정권이 없고 오히려 암살의 음모론을 뒤집어써야 할 만큼 불편하게 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의 정권이 가장 친미적이지 않은가 싶네요. 헛다리를 짚어 그렇지. 영국과 터키가 싸울 일은 없지만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긴장은 언제라도 일촉즉발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애지중지할 건 한국이지 일본은 아닐 겁니다. (잡은 고기를 뭐 하러..) 말 안 듣는다고 던져버리기엔 알박아 놓은 반쪽자리 땅을 포기할 만큼 양키들이 바보가 아닙니다. (이번 터키 건에서 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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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터키의 공식은 19세기적 상황에서 가능하지요
그런 관계를 지금의 시대에 대입하면
영국은 미국이 되고 터키는 일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의 정부가 친미적이라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역대정권중에서 가장 친미적이면서도 반미적 표피를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 현정부의 정체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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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작은 동맹의 이익에 대해서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는 글에 지극히 공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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